마태복음 21장 1-11절 “나귀를 타신 예수님” /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 십자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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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20240324-나귀를 타신 예수님)
성경: 마태복음 21:1~11
❍ 들어가기
오늘은 절기상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죽으셔만 했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길에 깔고, 그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주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흡사 개선장군의 행렬 같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오해한 백성들의 욕심과 헛된 기대가 반영된 모습이고, 주님은 그런 백성들이 곧 자신을 향해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것을 아시면서도 가신 길입니다. 오늘 주님이 기꺼이 가신 그 길의 의미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 본문으로
1. 슈퍼스타
개인적으로 연애인들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끔 TV에서 연애인을 향해 격하게 호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모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고, 그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그런 스타들 중에서도 ‘슈퍼스타’가 있습니다. 오늘날 BTS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슈퍼스타입니다. BTS가 공연하는 곳곳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BTS의 굿즈는 없어서 못 판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는 더 높은 가격에 재판매되기도 합니다.
양상은 다르지만,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은 최고의 슈퍼스타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듣는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기만 하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 군중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유월절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문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마태복음 21:8~11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입성으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저마다 큰 소리로 예수님을 높이는 찬양을 합니다.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가지 나무를 꺾어 길에 깔고 손에 들고 흔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난리입니다. 엄청난 환호입니다. 더 없는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그렇게 흥분되어 계신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면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마태복음 21:6~7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그리고 성령께서 마태를 통해 주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이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21:4~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1) 겸손의 왕
예수님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겸손’입니다.
마태복음 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백성들을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에게 쉼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주님은 바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성도들이 품어야 하는 마음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주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던 것은 바로 자신을 비워 낮추신 겸손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본 받아,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교만’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하게 주님을 본받고, 주님의 마음을 품어 철저하게 ‘겸손’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죽음을 위해 가신 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은 마치 슈퍼스타의 콘서트장과 같았지만, 정작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신 목적은 죽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17~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이미 여러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이른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말씀하시던 일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한 군중들의 흥분되고 열광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이게 주님은 차분하시고 조용하십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사명을 이루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21~24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예수님이 가셔야 하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항변합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생각하는 충성됨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것이 제자들이 가야 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지지하고 환호하는 길이 아닙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길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해야 만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사명’의 길입니다.
3. 사명의 길 – 대속의 길
주님이 그렇게 가신 길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목적은 처음부터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 충만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어린 양’은 곧 ‘화목제물’을 의미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20~22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1) 사랑 때문에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화목제물 삼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1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2) 은혜의 복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로 우리는 구원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런데 여전히 ‘우리의 행위’ ‘우리의 어떠함’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미혹하는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비유를 알아야 구원 받고,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 받고, 스스로 온전함을 이루어야 구원 받고, 죄사함의 비밀을 알아야 구원 받고....’
모든 이단들은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받는 구원을 부정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치르신 구원을 훼손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완성하신 구원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을 구원자로 주신 일이 없습니다.
이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하는 신실한 믿음의 종들 되시길 바랍니다.